
양면의 기계장치
Mechanism of the Seamy
@저자 : 나단 (Nathanblog@egloos.com)
@원작 : ZUN / 上海アリス幻楽団 / 東方project
@본 작품은 픽션입니다. 따라서 본문에 등장하는 내용과 설정은 원작과 일절 상관이 없으며, 모두 저자의 창작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본 작품의 모든 권한은 저자인 나단(Nathan)에게 있습니다. 게시물의 자유로운 이동은 가능하나, 저자의 허락이 없는 본문의 수정 및 상업적 이동은 금지입니다.
* * *
말이 없는 것은 청산이요, 모양이 없는 것은 유수로다.
값없는 것은 바람이요, 주인 없는 것은 밝은 명월이라.
만고(萬古)의 시간이 흐른들 청산은 어찌하여 영원히 푸르며
유수는 또 어찌하여 주야(晝夜) 내내 그치질 않는가.
“나라는 망해도 산천은 변함없이 그곳에 있음이라…… 인가.”
낮게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새벽녘의 어슴푸레한 빛에 감싸여 허공을 떠돈다. 달빛이 기운 양산을 지붕으로, 머리카락을 쓰다듬고 지나가는 바람을 의자 삼아 하늘에 앉아 있는 소녀는 무언가 생각에 빠진 것처럼 한 손으로 턱을 괴고 먼 지평선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다.
소녀와 같이─ 긴 세월을 살아가는 요괴에게 있어 변화하는 세계의 모습을 목견하게 되는 건 필연이라고도 할 수 있다. 변화하는 인종, 변화하는 거리, 변화하는 문화, 변화하는 마음들. 그것은 소녀 자신도 스스로의 긴 세월 속에서 일찍이 깨닫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자신만이, 수만의 변화가 오고가는 격동의 흐름 속에서 예외 없는 모습으로 변화하는 세계를 변화하지 않고 사랑하고 있다는 건 어떤 옛 기억이 고하는 모습인걸까.
하지만 그것도 슬슬,
그 모습이 스스로를 속이는 거짓말이었음을 인정해야 할 때가 되었다는 말인가 보다, 라며.
소녀는 바람소리에 묻혀 잘 들리지 않는 말을 조용히 중얼 거렸다.
* * *
가을 아침의 쌀쌀한 바람에 어깨를 움츠리면서도, 오늘도 변함없이 붉은 옷의 무녀─ 하쿠레이 레이무는 경내에 쌓인 낙엽을 빗자루로 쓸고 있었다. 요즘 때처럼 평화로움이 계속되는 날에는 딱히 그걸 빼면 할 일어 없어진다는 것도 있긴 했지만, 가을이라는 계절에 걸맞게 신사 내의 가로수에선 빗자루를 놀리고 있는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낙엽들을 떨어뜨리고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더 강하기 때문이겠지. 그 모습이 밑에서 낙엽을 쓸고 있는 저 무녀에게 일해라~ 일해라 라며 살금살금 약 올리는 기세와 비슷하게 느껴졌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오늘의 레이무는 평상시보다 살짝 기분이 나빠 보였다.
“좋은 아침~ 오늘도 열심이네.”
무녀 외엔 다른 사람이라곤 아무도 보이지 않았던 경내에 경쾌한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하지만 굳이 뒤를 돌아보는 수고를 감행하지 않아도 그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일지 너무나도 쉽게 상상이 갔기에, 레이무는 목소리에 맞인사를 건내기보단 한숨을 내쉬는 쪽을 선택했다.
“오늘은 또 무슨 일이야. 쓰잘데없이 놀러온 거라면 그만 돌아가.”
“가을바람이 좀 차서 그런가. 바람이랑 똑같이 쌀쌀하게 느껴지는 무녀씨라네. 계속 그랬다간 다가오는 겨울에는 동사해 버릴지도 모른다고?”
“적어도 내년, 내후년, 그그 내후년의 내후년까지 동사할일은 없다고 생각되는데.”
결국 빗질을 멈추며 레이무는 체념 섞인 몸짓으로 등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그곳엔 예상했던 것처럼, 양산을 어깨에 걸친 채 이쪽을 바라보며 빙긋 웃고 있는 유카리의 모습이 있었다.
“이번엔 또 무슨 꿍꿍이인거야?”
“별로~ 꿍꿍이가 있다거나 한 건 아닌데.”
지나가는 길에 신사에서 차 좀 얻어 마실 수 없을까~ 해서 왔어, 라고 덧붙이는 유카리의 말에 레이무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빗자루를 벽에 기대 세워놓으며 신사 안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자신의 기억이 맞다면 반빗간에 어제 마시다 말고 말려둔 찻잎이 남아있을 터였다.
“그러고 보니 레이무, 요즘 들어 통 기분이 나빠 보이네.”
“어디에서 나타났는지도 모를 녀석이 툭하면 이유도 없이 주위를 돌아다니기 때문이 아닐까.”
“어머, 누군진 모르겠지만 그건 좀 피곤한 사람일지도.”
“그렇지? 예를 들면 내 뒤에 양산을 들고 서 있는 녀석이라거나.”
째릿하고 노려보는 시선에도 아랑곳안고 싱글싱글 알 수 없는 웃음을 짓는 모습이 꼭 그녀다웠기에 레이무는 더 이상의 딴지걸기를 체념해 버렸다. 애초에, 말로해서 알아들을 것 같지도 않고 말이지.
“시시때때로 라는 점도 그렇지만, 그래. 이유가 없다는 점이 제일 질이 나빠.”
“응? 이유가 필요한 걸까?”
되묻는 유카리의 질문에 레이무는 대답하기 싫은 듯 고개를 돌렸다. 때문에 레이무의 표정에 어느새 짙은 그림자가 내려앉아 있음을, 유카리는 보지 못했다.
“네 그런 점, 꼭 감시당하고 있는 것 같아서 기분이 나쁘다고 말하고 있는 거야.”
슬슬, 중점을 벗어나 빙글빙글 돌아가고 마는 우스꽝스런 방향을 돌려야한다고 생각하면서.
앞서 걸어가던 레이무의 걸음이 뚝 하고 멈춘다.
“……말해봐.”
쏴아 하고 부는 역풍에 긴 머리카락이 사납게 흔들거린다.
“실제로도 그런 거니?”
등을 돌린 채 묻는 레이무의 말에 쌀쌀한 바람 소리만이 경내를 맴돌 뿐, 질문에 대한 대답은 곧바로 들려오지 않았다. 묵직하게 내려앉은 침묵에 레이무의 손이 긴 소매 사이에 숨어 꽉하고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거구나.”
길게 느껴진 시간이 흐른 뒤에, 하지만 결코 길다고 할 순 없는 짤막한 순간 사이에, 나지막히 중얼거리는 그 목소리를 레이무는 놓치지 않았다.
“말했잖아? 차를 얻어 마시고 싶어서 온 거라고.”
아까의 중얼거림은 전혀 없었던 것처럼 생긋 웃으며 명량한 어조로 말하는 유카리의 목소리에 레이무는 자신의 평정심이 한계에 직면했음을 느꼈다. 이렇게까지 말하는데도, 유카리의 빙긋 웃는 얼굴은 평상시의 모습과 전혀 달라진 것이 없었다.
그것이 증명.
자신은─ 이 요괴에게 있어, 언제나 그것뿐인 허울의 가식으로밖에 상대되지 않는 사람이라는 얘기다.
“차는 없어. 그러니 오늘은 이만 돌아가.”
더 이상 다가오지 말라는 무언의 흉흉한 기운을 남긴 체 레이무는 곧장 신사로 들어가 쾅 하고 방문을 닫았다. 문이 닫히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천천히 경내를 가로지르던 유카리의 발걸음이 멈춘다. 남겨진 그 모습에서 무언가를 생각하듯이, 휘날리는 긴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그 표정은 예의 평소의 미소짓는 표정에서 벗어나 양산의 어두운 차양이 그대로 드리워져 있었다.
* * *
“어~이, 레이무 있어?”
신사의 문을 쾅쾅 두드리는 소리에 레이무는 귀찮은 듯 눈썹을 찡그렸다. 하지만 그것 뿐, 자리에서 던져진 과일 껍질마냥 이불을 뒤집어 쓴 채 납작 누워있는 몸뚱이는 귀찮아~ 라는 머리의 의견을 대신 표현해주듯 움직일 줄 몰랐다.
“있는 것 같으니 나 들어간다?”
분명 빗장을 걸어두었던 것 같은데 별 무리 없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습이 그 남아도는 괴력을 대변해 주는 것 같다. 열려진 문 사이로 불쑥 고개를 내미는 두 쌍의 뿔은 보기만 해도 자칫하면 저것에 찔리지나 않을까 하는 아슬아슬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레이무, 자는 거야?”
마치 길거리에 떨어진 신비한 물건을 바라보는듯한 자세로 이불을 뒤집어 쓴 레이무를 내려다보며 스이카가 작게 중얼거렸다. 대답이 없자 스이카는 이불 옆에 낮은 자세로 쪼그려 앉더니 한 손으로 그것을 쿡쿡 찔러보기 시작했다.
“──정말, 오늘은 영업 정지니까! 좀 자게 내버려 달라고.”
이불 사이로 다 꺼져가는 낮은 신음성이 흘러나온다. 그걸 보고는 스이카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이불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한 손은 이불과 눈씨름이라도 하듯이 턱에 걸친 상태다.
“대체 무슨 일이야. 요즘 들어 통 기운도 없어 보이고. 레이무 너 답지 않아.”
아무 말 없이 잠잠한 이불을 바라보며 스이카는 눈썹을 살짝 찡그렸다.
“안자고 있는 거 다 아니까 뭐라도 좀 얘기해 봐. 레이무, 무슨 일 있었어?”
휙하고 이불이 안쪽에서부터 젖혀지며 잔뜩 불쾌해 보이는듯한 레이무의 얼굴이 드러났다. 얼마를 그러고 있었던 것인지, 머리카락은 실컷 자다가 일어난 사람처럼 이리저리 삐져나온 잔머리들로 봉두난발인 상태다.
“상관없잖아.”
“상관있어. 네가 내내 그러고 있으면 보는 사람이 불편하다고.”
“그럼 안 보면 될 것 아냐.”
“넌 하늘에서 비가 내린다고 하늘을 안볼 수 있겠냐.”
“그럼 하늘보고 비 좀 내리지 말아줘라고 말한들 비가 안 내리겠어?”
“어이…….”
무뚝뚝한 반응에 스이카는 잠시 당황한 듯 보였지만 이내 평정을 가다듬고 진지한 얼굴로 레이무를 돌아보았다.
“역시 유카리 때문이야?”
“……그럴리가 없잖아.”
“맞는가보네.”
멋대로 확정을 내리는 스이카의 모습에 레이무의 미간이 찡그려졌지만 틀리다고 부정하지 않는 걸 보긴 맞긴 맞는 모양이었다.
“유카리에 대해서라면 그다지 크게 상관하지 않는 게 상책이야. 그녀석 자체가 신출귀몰한 존재라서, 진지하게 대하면 되려 이쪽이 피곤해진다고.”
스이카의 얘기에 레이무는 여전히 미간을 찡그린 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 모습에 스이카는 끙 하고 신음소리를 흘리며 팔짱을 끼었다.
“하긴, 유카리쪽은 한번 엉키면 성가시긴 하지만 이쪽이 굳이 떨어지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알아서 거리를 유지하는 타입이니 그걸로 너무 마음 줘서 스트레스 받을 필요는…… 응?”
갑자기 째릿하고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스이카는 한기를 느끼며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눈앞에는 뚫어져라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살벌한 분위기의 레이무가 보였다.
“방금 뭐라고 했어?”
“별다른 얘긴 안 했는데……? 으익?”
자신의 어깨를 붙잡고 흔드는 레이무의 모습에 스이카의 입에서 짧게 기겁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거리를 유지한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레이무가 재차 묻자 흔들리는 손 따라 대롱대롱 고개를 흔들면서도 스이카는 대답하지 않으면 큰일 날 것 같은 위기감을 직감적으로 느꼈기에 또박또박 입을 열었다.
“그 녀석, 좀 그런 분위기가 있잖아. 사람을 상대하는데 있어 사이에 딱 경계선을 그어놓은 것 같은…… 그만 좀 흔들어!”
결국 잔뜩 불거진 불만을 터트리고 난 후에야 레이무는 스이카의 어깨를 놓아 주었다. 하지만 스이카의 얘기가 채 끝나기도 전에 레이무의 표정이 무언가 골똘히 생각에 잠긴 듯 심각해 보였기에 감히 말을 걸 엄두가 나질 않았지만.
“나 좀 나갔다 올께.”
“엥? 조금 있으면 해가 질 텐데── 어이, 레이무!”
대답도 듣지 않고 휭하니 신사를 빠져나가는 레이무의 기세에 스이카는 얼이 빠진 듯 가만히 앉아 그 움직임을 놀란 시선으로 쫓을 수밖에 없었다.
* * *
“어디 있어? 있는 거 아니까 썩 나왓, 유카리잇──!!”
환상향의 최북단, 대결계의 끝에서 레이무는 잔뜩 흉흉한 오라를 풍기며 손끝에서 폭격을 쏟아 붓고 있었다. 휘말리면 뼛가루도 남아나지 않을듯한 이 탄막의 폭격에 고스란히 두들겨 맞는 불행을 안게 된 당사자가 바로 대결계라는 점에서 요괴든 사람이든 누군가 이 광경을 목도하게 된다면 결계를 지켜야 할 사명을 지닌 무녀가 벌이는 이 말도 안 되는 참상에 그대로 기절한다 한들 그다지 놀랄만한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런 사정이야 어찌되었든 소나기같은 폭격에 쩌적, 하고 무녀가 떠 있는 하늘 사이로 작은 균열이 갔을 때, 레이무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탄막을 쏟아 붓던 손을 내렸다.
“정말, 어쩔 수 없는 아이네.”
애초에 레이무가 이렇게 결계를 두방망이질한 된 원인─ 경계의 요괴, 야쿠모 유카리가 틈새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결계 수호는 무녀의 엄연한 사명중 하나인데, 이래도 되니?”
비꼬는 것인지 걱정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그 애매모호한 말투가 엄연히 유카리답다. 레이무는 자신의 머릿속이 급속도로 차가워지는 것을 느끼며, 호흡이 안정을 되찾자 천천히 입을 열었다.
“확실하게 대답을 듣고 싶어서 왔어.”
“다른 방법도 얼마든지 있었을 텐데. 이런 방식은 좀 거칠지 않을까.”
“그렇담 거소라도 확실하게 하던가! 그럼 굳이 이런 짓 하지 않았어도 됐잖아!”
윽 하며 버럭 소리를 지르는 레이무의 모습에 유카리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작게 한숨짓곤 빙긋 웃음을 띠운다.
“그래서, 날 만나고자 한 용건은 뭘까.”
앞으로 있을 얘기를 들겠다는 듯 유카리가 틈새위에 앉아 자세를 잡자 레이무는 시선을 차갑게 내리뜬 채 본론을 꺼냈다.
“네가 환상향의 일에 대해선 누구보다 솔선수범하는 괴상한 요괴라는 건 잘 알겠어.”
유카리는 여전히 그 속을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은 얼굴 그대로 묵묵히 레이무의 말을 듣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별다른 이유도 없이 툭하면 ‘신사’를 드나드는것과 관계가 있는 거야?”
레이무는 굳이 신사를 무녀─ 자신으로 바꾸어 말하지 않았다.
이유는 단순하다.
“그러면 안 되는 걸까?”
그래, 눈앞의 요괴는 단순히── 하쿠레이의 신사를 찾아온 것이지, 자신을 찾아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장난하지 마.”
만약, 하쿠레이의 신사가 환상향에 있어 그다지 중요한 요소가 아니라면 어떠했을까.
만약, 자신이 무녀가 아닌 다른 어떤 형태를 지니고 있었다면──
“알고 있을 것 아냐.”
──유카리는, 어떠한 얼굴을 한 채 이쪽을 바라봤을까.
“난 너에게 있어 하쿠레이 레이무는 무엇이냐고 묻고 있는 거야!”
최후에, 레이무는 안에서 한껏 소용돌이치던 감정들을 입 밖으로 폭발시켜 버렸다.
소매 안에서 두 손이 주먹을 쥔 채, 불안함과, 울분과, 간절함을 담은 시선이 그 앞에 있을 일을 두려워하듯 천천히 유카리쪽을 올려다봤다.
하지만──
“……하쿠레이의 무녀.”
한 순간, 유카리의 눈동자가 흔들린 듯이 보였던 것은 자신의 착각이었던 것일까.
“환상향을 지지하는 기둥, 하쿠레이 대결계를 수호할 의무를 지니고 있는 자.”
레이무와 유카리의 시선이 마주쳤다. 어둠속에 숨어 빛을 훔쳐보는 야행성의 생물들이 대게 그렇듯이, 유카리의 동공은 세로로 얇게 펼쳐져있었다. 그것이 예의 이 눈앞의 존재가 어김없는 세상의 이단자, 요괴라고 고하는 것 같다──.
“마치 꼭 그 점을 잊어버린것처럼 말하는구나.”
하지만 그것도,
잔혹하게 가슴을 꿰뚫는 이 비수 같은 한마디에 비할 수 있을까.
“──하쿠레이의 레이무.”
탄막이 터졌다.
시야를 자욱하게 가리는 연기에 콜록거리며 유카리는 자신의 입가 주변을 손으로 감쌌지만 이내 곧 눈앞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발견하고 손을 내리고 말았다. 애초에 시야를 가릴 생각이었다면 자신에게 이 정도의 탄막으론 소용이 없다는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아이다.
유카리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자욱한 연기에 가려 보일리가 없는 저 너머였지만, 하늘 너머로 붉은 옷의 무녀가 등을 돌린 채 날아가고 있음을── 유카리는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 * *
“뭐야, 뭐냐고! 그 스키마녀석!”
역풍에 등 뒤로 흩날리는 눈물방울을 대충 손으로 훔치며 중얼거린다. 하지만 낚아내는 것보다 흐르는 눈물의 양이 더 많았기 때문에 레이무는 이내 그 행동도 그만두고 말았다. 할 일이 없어진 두 손은 분한듯이 주먹을 꽈악 쥐고 있었다.
“레이무? 무슨 일이야? 눈가가 빨간데──”
“시끄러! 나한테 상관 마!”
신사 경내에 착지하는 자신의 모습을 본 것인지 스이카가 달려 나오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묻는다. 하지만 그런 걱정 어린 질문이 지금의 레이무의 귀에는 들려오지 않았다.
“자고 싶어. 아니, 잘래. 그러니까 건드리지 말아줘.”
거칠게 손을 뿌리치며 레이무는 성큼성큼 신사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재차 붙잡힌 어깨에 짜증을 내며 등을 돌리고 만다.
“레이무, 잠깐 나랑 얘기 좀 해.”
“상관 말아달라고 했잖아! 대체 몇 번을 말해야──”
“시끄러워! 그런 괴로워 보이는 표정으로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마!”
평소의 스이카답지 않게 버럭 호통을 치는 모습에 레이무는 어안이 벙벙한 듯 멍한 표정이 되었다. 그 잠깐의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스이카는 호흡을 고를 사이도 없이 재빨리 말을 잇는다.
“너, 요즘 내내 그렇게 안 좋은 표정 하고 돌아다니는 거 유카리 때문이지? 아니라고는 하지마. 다 생각하고 말하는 거니까.”
스이카의 말에 레이무는 조용히 고개를 떨어뜨렸다. 자신의 속을 들킨 것이 분한 것인지, 평소보다 가녀리게 느껴지는 그 양 어깨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나도 들은 얘긴데 말야, 레이무.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사랑이 뭔지 알아?”
묵묵한 침묵을 대답으로 받아들이곤, 스이카는 레이무를 향해 힘없는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리듯 말끝을 이었다.
“짝사랑이래.”
“인간과 요괴이기 때문에 말도 안 된다는 얘길 하는 거라면 그만둬. 무엇보다 난──”
“그래. 그렇기 때문이야.”
바람이 분다. 약간은 쌀쌀하게 느껴지는 그 가을바람에 머리카락을 맡기듯이 고개를 위로 젖히며, 스이카는 마음속에 묻어뒀던 그 한마디를 꺼내려는 듯 잠시 두 눈을 감았다.
“너, 단순히 유카리를 퇴치하고 싶었던 것 아냐?”
그 말에, 경내의 시간이 멈춘다.
뚝 하고 정지해버린 그 유동의 흐름 속에서, 레이무의 두 눈만이 놀람으로 크게 확대되고 있었다.
“──무, 슨 소릴.”
하는 거야, 라는 말은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알 수 없었다. 스이카의 말은 온통 수수께기 투성이라, 그 의미를 알 수 없었다. 분명 그럴 텐데도, 가슴 한구석이 턱 막힌 것처럼 답답해진 것은 대체 무슨 이유에서란 말인가.
“유카리를 퇴치하고, 파괴해서, 네 형편에 맞는 모습으로 다시 재조립하려고 하지 않았어?”
말이 나오질 않았다. 자신을 꾸중하듯 진지하게 이쪽을 바라보는 스이카의 눈동자 속에서 레이무는 혼란스러워하는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시간이 흐른다. 스스로 그 혼란 속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조용히 기다리고 있던 스이카는 레이무가 묻는듯한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자 싱긋 웃으며 그 한마디를── 작게 속삭였다.
“유카리가 정한 너와의 경계를 인정해 줘.”
──비가 내렸다.
하지만 그런 것에는 아랑곳하지 않는 듯, 레이무는 어둑어둑한 구름이 잔뜩 끼인 하늘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빗물이 눈물처럼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는 그 사이에, 스이카가 자신에게 해줬던 말을 기억해낸다.
인정해 줘, 라고.
그 한마디를 잊지 않으려는듯이, 레이무는 빗소리에 파묻혀 들리지 않는 작은 목소리로 그 말을 중얼거려보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경계는 어디에 있는 걸까.
그것들은 전부 만질 수도 없고, 보이지도 않기에 불분명하다.
자신이 인지해야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결정하는 요소는 늘 외부에 존재한다.
때문에 경계를 두고 거리가 벌어진다.
불일치, 갈등, 혼란, 오해, 불신등의 요소로 인해 그 거리는 더욱 가속화되어간다.
내가 과연 저 너머를 넘을 수 있을까, 그 안으로 들어가도 되는 것일까 하며 불안함은 커져만 간다.
하지만──
거리가 벌어지기만 할 뿐인 경계라면, 처음부터 그런 건 필요도 없는 게 아니었을까.
멀어지기만 할 뿐이라면 처음부터 상대를 구분짓는 요소 따윈…… 일찍이 의미를 잃었을 테니까.
그랬다. 처음부터─ 거리 있는 경계 따윈 없었던 것이다.
그것은 양면과도 같았다.
그 무엇보다 가까이 존재하면서도, 경계를 사이에 두고 뒷면이 보이지 않기에 늘 먼 곳을 응시하고 만다.
그랬기 때문에 사람은, 항상 서로를 구분시하면서도 경계 너머엔 자신과는 다른 무엇이 존재하고 있다고 느낄 수 있다.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이 경계를 중심으로 자신과 등을 마주하고 있는 사람이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멀지 않다. 그것은 또한 가깝지도 않았다.
양면을 나누는 것은 자기 자신──
경계를 만드는 것은 언제나 구분의 중심에 서 있는 우리들, 기계장치였던 것이다.
날기가 힘들다고 느껴질 정도로 쏟아지는 폭우 속에서 희미한 사람의 인영을 발견한 레이무는 고개를 들었다. 몇 시간 전, 자신이 유카리를 부르겠다고 금이 가게 만든 대결계가 있던 장소다.
……아직도 있었던 건가.
그곳에 유카리가 있었다.
평소에 버릇처럼 들고 다니던 양산은 어떻게 된 것인지, 공허한 시선을 금이 간 대결계에 둔 채 쏟아지는 비를 그대로 흠뻑 맞고 있다.
그 바보같아 보이는 모습에, 레이무는 안에서 울컥하는 기분을 느끼곤 이를 악물었다.
“이── 바보 멍청이 틈새요괴같으니───!!”
쩌렁쩌렁한 고함소리가 빗속을 뚫고 하늘을 진동시킨다. 그 소리가 닿았던 것인지, 유카리의 고개가 천천히 레이무쪽을 향해 돌아선다.
“환상향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요괴라고? 웃기지 마. 그런 씨알도 안 먹힐 얘기, 나한텐 안 통해!”
비에 가려 불투명해 보이기도 했지만, 비에 젖은 머리카락 때문에 유카리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것은 안중에도 없는듯이, 레이무는 내뱉듯 다음 말을 계속 이었다.
“세상을 사랑한다고 자칭하고 다니는 녀석들은 전부 바보에 겁쟁이들뿐이야. 세상은 그 누구도 질투하고 미워하지 않으니까, 난 그 누구보다 이 세상을 사랑했노라 하면서 사람들로부터 도망치고 있는 거라고!”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아무래도── 이 말을 하지 않으면, 레이무는 자신의 안에서 꿈틀거리는 이 울분이 평생 동안 가시지 않을 것 같았다.
“멋대로 사람 사이의 경계를 결정하지 마. 난 무녀라고! 요괴 퇴치가 본업이란 말야. 그러니까── 요괴인 네가 멋대로 만들어 낸 경계 따위, 몇 번이고 깨부수고 넘어서 보이겠어!”
빗소리가, 마치 북을 울리는 것처럼 크게 들린다. 쿵쾅쿵쾅하고, 쏴아쏴아하고.
틀림없어. 유카리 녀석, 이곳의 소리의 경계를 없앤 거야. 그렇지 않고서야 소리가 이렇게 크게 들릴 리 없잖아.
뜨거워진 가슴을 움켜쥔 채로, 레이무는 거칠어진 호흡을 고르며─ 하고싶었던 마지막 말문을 이었다.
“네가 어떻게 생각해도 좋아. 하지만, 난 너를──”
자신의 머리 위로 더 이상 빗방울이 쏟아지지 않음을 눈치 챘을 때, 레이무는 소리의 경계가 없어진 것도, 귀에서 들려오던 소리도 빗소리가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레이무.”
쿵쾅쿵쾅하고, 그 다음에 이어질 말도 잊어버릴 정도로── 어느새 눈앞으로 다가와 자신을 향해 우산을 들고 있는 금발의 소녀의 모습으로 시선이 가득 차 버려서, 이대로라면, 틀림없이 심장이 망가질 것만 같다.
“……왜.”
젖은 머리칼 사이로 살짝 미소를 지으며, 유카리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옷이 젖어서 다 비처보이는 거, 알고 있어?”
쏴아아아─ 하고 빗소리가 공기를 적신다.
얼이 빠진듯 하다가, 어이가 없는듯 하다가, 기가 막혀하는 듯 하면서도, 종국엔 화가 치밀어 오른듯한 표정으로 무언가를 버럭 소리 지르려는 레이무를 바라보며, 순간적이지만 마치 슬로우 모션을 돌리듯── 유카리는 그 볼가에 입을 맞췄다.
“…………아.”
레이무가 상황을 이해하기까지 3초. 그리고 볼이 새빨개지기까지 5초의 시간이 흘렀던 듯 하다. 마치 물 밖으로 나온 붕어처럼 뻐끔뻐끔 입만을 움직이는 레이무를 보고는 쿡 하고 웃으며 유카리는 자신의 얼굴을 레이무의 귓가에 댄 채 비밀 얘기를 나누는 연인마냥 작은 목소리로 이와 같은 한마디를 속삭였다.
“명심해 두렴. 요괴는 변덕스러워서 말이야, 언제 사람을 습격해 올지 모르거든.”
“뭐……뭣……!”
정신을 차린 레이무가 고개를 돌리자 유카리는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본 채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어느새 비가 그친 하늘에서는 달빛이 빼꼼히 고개를 내밀며 대지를 바라보고 있다.
“이러고 있다간 감기 걸리겠다. 일단은…… 그래. 젖은 옷도 말릴 겸 신사에 돌아가 차라도 마실까.”
“윽…… 멋대로 결정하지 말라니까!”
능청맞게 말하는 유카리를 바라보며 레이무가 뚱한 표정을 지었지만 거기엔 이전과 다른 명료함이 있었다. 먼저 갈께 하며 활짝 미소짓고는 앞서 나가는 유카리의 뒤를 따라 하늘로 날아오르는 레이무였지만, 유카리가 평상시처럼 틈새를 이용하지 않고 자신과 같은 하늘을 날고 있음을, 레이무는 눈치 채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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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슈모토]] 레이무를 지지하는 마음에서 작성한 팬픽입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짝사랑에 대한 비유는 드래곤라자의 유명한 그 장면을 차용한것이죠.
음음, 지금 생각해도 명대사라니깐.